2023. 서구학 에세이
보고싶은 내사랑 경서동 버드나무 삼남매야
(김경은, 고세자)
출퇴근길 눈에 띄인 버드나무 세 그루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버드나무가 마치 정답게 서있는 삼남매처럼 느껴져서 버드나무 삼남매라 이름 지었습니다. 이 삼남매를 만나려고 불편하지만 10여년동안 이 도로를 다녔습니다. 수양버드나무 세그루는 개발바람이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르는 경서동 들판을 아련히 내려다보며 굳건히 버티는 삼남매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웃한 인천국제CC골프장의 가꾸고 다듬은 나무들과는 대조적으로 자연 그대로의 수양버드나무 삼남매가 있는 경서동 들판의 모습이 더 정겨워보였습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수양버드 삼남매의 흔들림을 보면서 이소라의 <바람>을 흥얼거리며 사진에 담았습니다. 찔레꽃이 필 때는 장사익의 <찔레꽃>을 불렀지요. 비가 오는 날이면 채은옥의 <빗물>도 불렀고요. <참 아름다워라>라는 찬송가도 목청껏 불렀지요.
그런 어느날 경서동 작은 들판에 플래카드가 붙었습니다. ‘주말농장 분양합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포크레인이 나타났습니다. 흙을 가득 심은 덤프트럭이 논을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변화해가는 들판풍경을 담느라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노라면 험상궂은 남자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듯 노려보곤 했습니다. 뭐라 안해도 마음이 놀라 얼른 사진을 찍고 그 자리를 떠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삼남매 옆자리에 포크레인이 대기하고 있는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검은 비닐하우스가 세워지고 온갖 농기구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 2020년 3월 가던 길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였습니다.
‘어쩌나~~~ 버드나무 삼남매중 한 그루가 사라져 버렸네. 아! 기어이 자르기 시작하는구나. 드디어 잘라버렸네.’ 내 심장 한 부분이 잘려나간 듯, 내 폐의 한 조각이 잘려나간 듯 나는 순간 카메라를 들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호흡이 멈춰버린 듯..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너무 잔인해, 너무 폭력적이야 너무 허전해, 너무 실리적이야.’
2021년 새해가 시작될 무렵 남은 두 그루도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키우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보탠 것 없지만 오가며 보던 풍경이 없어져버리니 너무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눈발이 휘날리는 들판에 서서 멍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습니다. 메워지고 잘리고 파헤쳐지고 송두리째 변해버린 들판 하염없이 서있었습니다.
내 사랑 버드나무 삼남매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인간 세상은 이렇단다. 경제적 논리에 따라서 돈이 된다면 너희들은 안중에도 없어 논보다는 밭이 좋단다. 밭보다는 비닐하우스가 더 좋고 이제 그러다가 택지로 바뀌면 지주들은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겠지. 추억이 무슨 대수라고, 풍경이 무슨 밥벌이가 되느냐고, 낭만이 어찌 돈이 되냐고 지주들은 투덜거릴거야. 궁극적으로는 대단위 아파트가 세워지고 건설업자가 재벌로 등극하는 발판이 되겠지.
이제는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는 풍경들. 버드나무 삼남매가 지켜보던 봄이 오던 들판의 백로와 왜가리들은 어디에서 먹이를 찾을까? 짹짹거리며 들판 이곳 저곳을 날아다니던 참새들아, 너희들은 이제 어디로 간거니? 버드나무 삼남매 가지에 숨어서 숨박꼭질하던 참새들아 이제 너희들은 어디에 숨지? 겨울이 되면 눈밭을 헤치고 벼짚을 먹던 기러기들아 이제 너희들은 식량터를 잃어버렸구나 더 고된 삶이 되겠네
경서동 작은 들판은 나뉘어 주말농장으로 분양되었습니다. 거대한 비닐 하우스도 몇 동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제게 추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보고 싶지 않은 추억의 장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경서동의 낭만도 아름다움도 즐거움도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슬픔과 아픔과 아련함만이 가슴에 남은 풍경이 되었습니다.
▲ 경서동 들판의 봄품경
▲ 경서동 들판의 봄풍경
▲ 5월의 찔레꽃핀 풍경
▲ 7월 여름날의 바람부는 풍경
▲ 8월의 참새떼
▲ 9월의 석양
▲ 10월 벼가 익은 풍경
▲ 기러기떼가 있는 겨울풍경
※ 사진출처 :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