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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의 숨은그림찾기 (김경은, 유헌옥)
  • 관리자
  • 2023-12-22
  • 120

2023. 서구학 에세이

검단의 숨은그림찾기

(김경은, 유현옥)

 16년 전만 해도 나에게 검단은 낯선 곳이었다. 그 당시 산을 좋아하던 나에게 검단은 하남에 있는 검단산으로만 인지되었다. 이곳 검단을 알게 된 것은 몸이 상하도록 일에 파묻혀 살던 내가 오랜만에 휴가 같은 주말을 얻은 어느 오후였다. 작은 아이의 책상을 사기 위해 온 가족이 집을 나선 그날은 하늘도 맑고 화창했다. 가구점을 향해 가는 도중 한 모델하우스가 눈에 들어왔고, 자석에 이끌리듯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방문자를 혹하게 할 온갖 시설을 다 갖추어 놓았다. 최첨단 시설에 넘어간 시어머니는 “집 참 좋다.”를 반복하시고, 남편은 그대로 집을 계약하고야 말았다.

 운명처럼 검단과 나의 인연의 시작점이 된 것이다. 효자인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집을 계약했고, 그 집부터 직장까지의 거리와 출퇴근 방법,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 등의 자금상황, 아이들의 교육문제 등은 생각할 거리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되어 버렸다. 계약 후 입주까지 걱정을 안고 살다가 어느덧 입주를 하게 되었고, 아이들은 검단으로 학교를 옮겼다. 그즈음 분당으로 발령이 난 나는 왕복 170키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는 고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언젠간 집을 옮겨야지’, ‘검단에는 정 주지 말자’ 하면서 산 것이 벌써 13년이 되었다. 13년이란 그 세월은 내가 지금까지 이사 다니면서 살아 온 집들 중 가장 오래 산 집이 되었고, 그만큼 정을 가장 많이 준 곳이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서구기록가’ 생활이라 할만하다.

 지난 2020년부터 시작해, 벌써 4년째를 맞고 있다. 서구에 힘들게 정착한 것처럼 서구기록가 생활 또한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늘도 없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길을 걸어야 했고, 어떤 날은 지도에도 없는 길을 찾아서 헤매야 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취재를 다니면서 요령도 생기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서구기록가 취재생활 중 가장 혹독했던 곳은 ‘류사눌묘’가 아닌가 싶다. 우리 기록가 6명은 2021년 서구기록사업 중 문화원 웹소식지를 만들기 위한 원고를 위탁받았다. 그 원고는 그룹을 만들어 같이 써도 된다고 하여서 세 명이 한 팀을 이루어 다니게 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결정된 곳이 ‘류사눌묘’였다. 1990년에 인천광역시 제5호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서구에서 오래 산 사람들도 잘 모르는 곳이라 우리가 취재하기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가슴 한가득 포부를 품고 길을 나섰다. 지도를 보니, 대중교통으로는 이용하기 어려워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

 

▲ 류사뉼묘 전경

 

  내비게이션을 따라서 한참을 가다 문득 정신을 들고 보니 계속 같은 곳을 지나치며 그 동네를 몇 바퀴 돌고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냥 갈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주위에 잠시 정차되어 있는 트럭 운전사에게 말을 걸었다. 다행히도 그 분은 그 곳 지리를 잘 아시는 분이었다. 트럭을 따라 좁은 길을 이리저리 가다 보니 그 분 또한 오랜만에 가는 길이라 길을 잘 못 들었다면서 또 다른 길로 안내해 주기를 여러 번, 그렇게 어렵게 찾아간 곳이었다.

 간신히 묘를 관리하는 분을 만나서 그 분 집 앞마당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전일 비가 와서 질퍽한 흙길을 한참 올라가서야 묘를 만날 수 있었다. 비록 찾기도 가기도 어려웠지만, 조선시대 문신의 무덤답 게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던가? 그 전까지는 서구기록가 생활도 다른 일상들처럼 나의 하루 일과에 불과했었다. 이런 힘든 취재를 몇 번 하고 나서는 서구기록가 생활이 예전같지 않아졌다. 취재 가는 곳마다 새롭고, 길가의 풀 한 포기마저도 소중해진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서구기록가 생활과 시민활동가 생활을 하면서 서구와 검단의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있다. 내가 어느 곳을 이 검단만큼 돌아볼 기회가 있었던가? 계절마다 바뀌는 나무와 풀의 사진을 찍고, 공사로 인해 조금씩 바뀌어 가는 마을의 모습을 찍는다. 비록 카메라는 아니지만 언제나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으로 서구와 검단의 달라지는 모습을 찍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과거의 사진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서 바뀐 모습을 찾다 보면, 숨은 그림찾기를 했을 때처럼 기쁨이 솟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서구기록가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가 보다.

※ 사진출처 :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