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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회화나무(김경은, 이수진)
  • 관리자
  • 2023-12-22
  • 437

2023. 서구학 에세이

내 친구 회화나무

(김경은, 이수진)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친구가 있다. 2018년, 7년 전 어느 봄날 해 질 무렵이었다. 새로 이사와 가벼운 마음으로 정서진 재래시장에 가는 길이었다. 올 때 오래된 빌라촌 골목에 들어섰다. 지저분하고 오래된 주택 틈에 보이는 울창한 나뭇가지가 나를 부르며 손짓하는 듯했다. 그곳에는 4층 높이 건물에 둘러싸인 위엄을 잃지 않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웅장하고 신령스러워 보였다. ‘왜 이런 곳에 나무가 있을까?’ 커다란 나무에 압도되어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천연기념물 315호 신현동 회화나무」라는 오래된 팻말이 그 나무가 500년이 넘게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왠지 울타리에 갇힌 커다란 나무도 내 처지와 비슷해 보였다.

   
 

 지난해 겨울 분양받은 아파트에 이사와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날도 아는 이웃이 없어 혼자 시장에 갔다. 배는 고픈데 혼자는 먹기 싫어 그냥 온 내 모습과 홀로 있는 나무의 모습이 겹쳤다. 당시, 갱년기를 심하게 앓고 있던 나였다. 이사 오고 나서 부쩍 감정 기복, 무력감과 우울감이 컸다. 멍하니 나무를 바라보다 사춘기 소녀같이 이 나무가 궁금해졌고 여러 감정과 영감이 떠올랐다. 그 후, 신현동 회화나무는 내가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힘들고 어렵고 복잡한 일이 있을 때 멍하니 하늘 위에 뻗어 있는 가지를 보며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천연기념물? 왜 여기에 있지? 회화나무는? 마을에서 나무의 의미는?’ 궁금한 것을 하나하나 풀어가며 나무와 점점 가까워졌다. 신현동에 회화나무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1982년 11월 9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될 당시 500년이라고 했으니 540년 정도 된 것이다. 보통 회화나무의 수명이 700년이라면 이 나무도 나처럼 중장년 나이인가? 천연기념물은「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중요한 가치가 있는 생물을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회화나무는 모양이 둥글고 아름다워 선조들의 사랑을 받았다. 선비를 상징하여 학자나무라 불리기도 했다. 퇴계 이황 초상이 있는 천원짜리 구지폐 뒷면에도 회화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도산서원에 있는 커다란 나무가 회화나무이다.

 신현동 회화나무는 500년이 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마을의 삶과 풍속, 관습, 신앙으로 얽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마을 사람의 보호와 사랑을 받고 있다. 당나무로서 오랫동안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 매년 봄에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빌고 길흉화복을 점쳐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민속행사 당제를 여기에서 지낸다. 나무의 꽃이 위쪽에서 먼저 피면 풍년이 오고, 아래쪽에서 먼저 피면 흉년이 든다고 예측했다고 한다. 회화나무는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라 한다. 홍수가 나서 옮겨졌다는 설과 마을 제사를 지내는 당산에 있는 나무를 지금의 자리에 옮겼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어찌 됐든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회화나무가 이전해왔다는 이야기이다.

  이곳에 무사히 정착한 신현동 회화나무는 내가 이곳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21년 신현동 회화나무를 알리기 위해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내 친구 회화나무」동영상은 제26회 서곶문화예술제 영상부분 수상작이 되었다. 초등학교 이후 받은 백일장 수상을 다시 하게 되면서 보람과 자신감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틈틈이 회화나무를 그리고 시를 짓고 이야기를 만들면서 그동안 용기내지 못했던 제2의 인생에 도전해 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구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인천 서구 이모티콘 만들기」수업에 참여했고 풍부한 감정을 가진 회화나무 이모티콘을 제작해 특별한 친구의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갱년기의 무력감을 극복하게 해주고 마을에 잘 정착하게 도와준 내 친구 회화나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사진출처 : 직접촬영 및 제작